선배들의 이야기

  • 강우석조선일보 강우석입니다.

    기자란 무얼까요. 단어 그대로 기자(記者), 옛 조선시대의 사관처럼 시대의 대소사를 명료하게 기록하는 직업일 수 있고, 날 것의 현장에서 우리 사회 폐부 곳곳을 찌르거나 대안을 길어 올리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혹자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발굴하는 데에 의의를 두기도 합니다. 과격한 멸칭으로 기자의 존재가치를 부정하거나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자만큼 정의가 다양한 업도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텍스트(글) 노동자라는 속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글을 다루는 직업, 그것이 어렵다면 글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일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운 좋게도 현장의 최전선에서 그것을 지겨울 만큼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됐습니다.
     
    다만 직접 경험해보니, 기자, 특히 제가 몸담고 있는 사회부 기동팀의 일은 무엇보다 ‘사람’ 노동자라는 말이 제일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유의미한 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수습 시절부터 만나 5분 이상 대화를 나눈 사람만 세어도 경찰, 노점상인, 방화범, 의사, 암 환자 ... 등 수백 명에 달합니다. 더구나 기자는 마냥 호의적이지 않은 상황에 놓이는 일도 많습니다. 거절, 무시 당하기는 일쑤고, 심한 경우 면전에서 천박한 욕설을 마주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을 등질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향한 환멸이 극에 달할 때에도 사람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는 것. 시작과 끝에 사람이 있는 업을 가진 이상 지녀야 하는 마음입니다.
     
    최근 한 청각장애 구두수선공을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14년째 해외 결핍 아동에게 기부를 이어오신 분이었는데, 선천적으로 말을 듣지도 하지도 못하셔서 화이트보드를 두고 서면으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기억에 남는 건, “사랑”이라는 단어. 그 분은 ‘어려운 형편에도 기부를 이어가는 이유’를 묻는 제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더니 두 글자를 적어 넣으셨습니다. 그 순간을 나의 활자로 옮길 수 있다는 것, 이 업만이 줄 수 있는 기쁨입니다.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한번 해볼 만한 직업입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 강지은조선일보 강지은입니다.

    어떻게 하면 기자가 되려나 고민하며 이 글을 누르신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고작 1년차 새내기 기자인 저는 아직 어떤 사람이 기자가 되는지, 어떻게 준비하면 기자가 될 수 있을지 그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다만 곧 그만두겠다고 거의 매일 뇌까리면서도 다음날 아침이면 번번이 전날의 다짐을 뒤집고 신명나게 출근하는 이유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월 3일, 수습기자로 첫 근무를 시작하던 날엔 겨울비가 내렸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가본 '지구대'라는 곳에서는 "언론 응대할 사람 없다"며 퇴짜를 맞았더랬죠. 에너지바와 핫팩으로 가득찬 가방, 휴대전화와 명합지갑에 늘어진 양쪽 외투 주머니, 두꺼운 장갑 낀 손으로 든 우산, 그 모든 게 얼마나 성가시던지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나는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쌓이면 눈길을 헤치고, 해가 나면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녀야겠다는 걸. '기자'라는 직함이 이름 뒤에 붙는다고 새로운 정보가 하늘에서 떨어질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라는 걸.
     
    그렇게 경찰서와 길바닥을 허위단심으로 쏘다니며 사람들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발제한 기사 아이템 취재를 위해 전국 지자체, 은행, 분식집, 초등학교 등 전화를 안 돌려본 곳이 없습니다. '아파트' 취재를 할 때는 10군데 넘는 건설사에 모조리 전화를 하고, '학식' 취재를 할 때는 대학마다 메일을 보내는 식입니다.
     
    취재라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출근길 시민들에게 말을 걸라치면, 그들 눈에 기자는 '도를 아십니까'를 외치는 포교자와 다름 없습니다. 취재원에게 "한 번 찾아뵐 수 있냐"는 문자를 5번 이상 보내도 답장 한 번 없이 무시당하고 나면 내가 이러려고 기자가 됐나 싶어 씁쓸합니다. "그 사실은 알려줄 수 없다"는 취재원의 단언에 한 번만 알려달라고 불쌍한 척 애걸하기도, 왜 알려줄 수 없냐고 따져 묻기도 하며 이중인격자처럼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취재는 어렵고, 사람들에겐 번번이 거절 당해서 기자 일이 재밌습니다. 하대를 즐기는 특이 취향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낯선 시민들과 결국에는 친해져 그들이 나눠주는 삶의 한 부분이 감사합니다. 거절당할지언정 누구에게나 만나자고 청할 수 있어 자유롭습니다. 공개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 당당히 질문할 수 있도록 하는 기자라는 자의식이 든든합니다.
     
    숱한 거절 속에서 느끼는 자유의 쾌감을 함께 즐길 후배님들을 만날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 구동완조선일보 구동완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내기 위해 행복을 추구하곤 합니다. 멋있는 옷을 사 입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생기는 소소한 행복부터 성취와 주변의 갈채로 얻어지는 내적 뿌듯함처럼 다소 진귀한 행복까지 말이죠. 행복은 우리네 삶을 지체없이 추진시키는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토록 행복을 추구하는 까닭은 삶이 고되고, 실은 고통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기자의 삶은 순탄치 않습니다. 기자의 삶은 날 것 그대로인 우리의 생애와 맞닿아 있기에 험난합니다.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려는 지점과 늘 마주해야 하고, 누군가 감추려는 흑심(黑心)을 수면 위로 드러내야 합니다. 또 언젠가 내 자신도 그리 떳떳하지 못한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난 7월 말 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 정문에서 담배를 피우러 집 앞에 나온 한 40대 남성이 이웃이 휘두른 일본도(日本刀)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 사건을 매체에서 보도하는 뉴스로만 접했더라면 호기심에 한 번 들여다보고 넘겼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파트 정문에 낭자하던 핏자국이 풍기던 역한 비린내와 자식의 끔찍한 비명횡사를 받아들이지 못한 유가족의 울분은 켜켜이 쌓인 삶의 껍데기를 단번에 날려버렸습니다. 삶이 늘 죽음과 맞닿아 있음을 깨달은 그 순간, 현장을 마주하기 전과 달라진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삶이 고통의 연속이란 사실은 어쩌면,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뜻입니다. 껍데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날 것만을 바라본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때론 가슴을 후벼파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통째로 부정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혐오하기 시작할 정도로 지난한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전진할 때,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견뎌낼 만큼 성장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누군가 기자를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해답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김병권조선일보 김병권입니다.

    ‘정답이 없는 직업’
     
    인턴을 포함해 기자라는 일을 시작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저이지만, 이 직업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정답이 없다는 건 양면성을 지닙니다. 이러한 직업적 특성 때문에 많이들 들어보셨을 “현장에 답이 있다”는 격언조차 때로는 의미 없는 공염불이 되기도 했습니다. 취재원이 오염되기도 하는 등 현장에는 변수가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MBTI가 J인 저로서는 이런 예측 불가한 상황이 닥칠 때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답이 없다’는 말은 달리 보면 발제 영역과 취재 방향이 무궁무진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가 속해있는 사회부 기동팀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어제는 교제 살인 현장과 사망자 장례식장을 갔더라도 오늘은 제주도에 가서 관광객 취재를 할 수도 있는 게 이 직업입니다. 일반 회사원이라면 가보기 힘든 현장에 가서 내가 생각한 야마에 맞게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쓴다는 건 나름의 특권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실제로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풀리기도 합니다. 언론 응대 담당인 경찰서 과장이 확인해주지 않은 사실을 평소 친했던 경찰한테 듣거나 타사 기자들이 생각해보지 못한 루트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돼 단독 기사를 쓰게 될 때, 이 일을 더 하게 될 힘을 얻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아마 기자라는 직업에 흥미가 있는 분들이실 겁니다. 이만한 직업이 없으니 꼭 기자가 되라는 건방진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시다면 인턴으로라도 경험해 보셨으면 합니다. 정답이 없는 이 직업과 세상 속에서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사실을 찾아내는 그 기쁨을, 여러분도 한 번쯤은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 김보경조선일보 김보경입니다.

    조선일보 김보경입니다. 경험해 보니 기자의 업은 곧 ‘삶’인 것 같습니다. 내가 왜 기자가 돼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면, 결과적으로 나는 어떤 자세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생각해 보세요. 거기 해답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단적으로 저는 ‘앉아만 있기 싫어서’ 기자직을 선택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준비생 시기를 '불안을 벗어던지는 시간'으로 삼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취준생 시기를 돌아보면 불안감이 제 온몸을 휘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은 자꾸만 흐르는데 제 맘대로 통제할 수 없는 변인이 너무 많았거든요. 원치 않는 결과 앞에선 내가 살아온 길을 부정하거나 바꿀 수 없는 조건을 탓하기도 했습니다.
     
    조금 절망적이지만 기자의 삶도 불안의 연속입니다. 어디든 가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큰 자유는 장점이지만 그 이면엔 불안이 넘실댑니다. 매일 어디서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우고 꼼꼼히 취재하는 것 모두 나의 책임입니다. 그 부담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내 하루 정도는 내가 스스로 꾸려갈 수 있다는 그 감각을 심지처럼 갖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엔 준비생 시기에 취미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다른 이유 없이 오로지 마음이 끌려서 언제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있다면, 그게 취직 후에도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더군요.
     
    입사 9개월을 앞둔 막내인데 벌써 선배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니 무척 떨립니다. 그간 저도 도움 드릴 수 있을 선배가 되기 위해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쓰고 있을 테니, 여러분도 지지 말고 이 터널을 완주해 주세요. ‘조선일보 기자’의 정형은 없다지만 스스로를 믿는 그 마음만은 잃지 마시고요. 다변한 세상을 함께 마주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곧 만나요!

  • 김영우조선일보 김영우입니다.

    "영우야, 네가 아산에 좀 가야겠다. 회사로 지금 이동하자."
     
    기자가 된 후 첫 마와리를 돌던 날이 아직도 기억 납니다. 점심을 먹고 파출소로 가고 있는데 일진 선배께 갑자기 전화가 왔죠.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피습한 김모씨의 집에 취재를 가야 한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전화를 받고 다른 선배와 급하게 향한 충남 아산. 제 첫 임무는 김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웃들에게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기자로서의 첫 임무치곤 꽤나 어렵게 느껴졌죠. 그래도 눈을 딱 감고 옆집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사람은 나오지 않았고, 윗층으로 향해 또 다시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결국 그날 기사가 될 만한 정보를 얻어내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김씨가 사는 아파트 모든 집의 초인종을 누르면서, 그리고 3일 동안 집 앞에서 김씨의 가족들을 기다리면서 '기자란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느꼈습니다.
     
    그 이후 수많은 현장에 덩그러니 놓였습니다. 전공의들이 사직했을 땐 병원으로 가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폐지를 줍던 70대 노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땐 노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듣기 위해 노인과 함께 폐지를 줍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기자가 되는 바로 그 날, 여러분의 삶은 그 이전과 크게 달라집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전 6시에 파출소 문을 열다 쫓겨나고, 오후 10시에 아무도 없는 경찰서 1층 로비에 멍하니 앉아 오는 사람이 없는지 기다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물론 기자로 일하며 남들은 하지 못하는 경험도 수없이 할 수 있습니다. 요양원에 계신 어르신들을 위해 직접 난타를 배워 공연을 다니는 요양원 원장 난타단의 '1호 팬'이 될 수도 있고, 남들보다 40~50년 늦게 학업을 마치는 만학도의 사연을 들으며 함께 눈물을 흘릴 수도 있습니다.
     
    기자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을 할 준비가 돼 있는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장윤조선일보 장윤입니다.

    저는 조선일보 채용연계형 인턴을 서류 전형부터 탈락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공채 전형으로 입사했습니다.
     
    저는 작년 봄부터 기자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원생이었던 저는 공부밖에 한 게 없었고 기자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유학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을 때, 공부하고 글 써서 돈 벌 수 있는 직업이 교수 외에는 기자뿐이었기 때문에 기자를 선택했습니다. 나이는 많았고 자기소개서에 쓸 수 있는 스펙도 없었습니다. 주변인들은 교원임용시험이나 법학적성시험을 준비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며 걱정했습니다.
     
    맨주먹이던 그 때, 매일 새벽 새 신문이 기숙사 방문 앞에 놓인다는 사실이 저의 기쁨이었습니다. 어느 신문사의 어느 전형을 탈락하든 그 다음날이면 새 신문이 왔고, 읽고 공부할 것이 있어서 다시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신문을 읽으며 진심으로 기자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기자를 준비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멋진 스펙이 생겨서(저는 조선일보 65기 기자들 중 유일하게 인턴 경력이 없습니다) 공채 전형에 합격한 건 아닙니다. 매일 신문을 읽으며 내가 왜 기자를 해야 하는지, 내가 기자가 되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할 것인지를 생각했습니다. 내 공부로 모두를 위한 글을 쓰고 싶어졌습니다. 그런 글을 매일 새롭게 쓰고 싶어졌습니다.
     
    모든 언론고시생들은 언론사 입사 준비를 하는 동안 매일이 불안할 것입니다. 기자가 되고 나서도 불안합니다. 그 불안을 견디며 매일 발제거리를 찾고 사람을 만나고 보도된 기사를 읽습니다. 혹은 매일 발제거리를 찾고 사람을 만나고 보도된 기사를 읽음으로써 불안을 견딥니다. 언론사 입사 준비 기간 동안,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하루도 열심히 사는 연습을 해 두길 바랍니다. 매일 신문 한 부 두께만큼 성장하고 있을 본인을 믿길 바랍니다.

  • 고유찬조선일보 고유찬입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 제가 기자가 된 이유입니다. 낯선 곳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밌습니다. 지루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라 대학 시절부터 강의실 바깥 세상이 궁금해 곳곳을 누볐습니다.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그 순간부터 기자처럼 살아보라고 감히 조언해드리고 싶습니다. 이슈가 생기면 무작정 현장으로 한 번 달려보세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마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사관으로, 2022년 대선과 지선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무작정 KTX를 탔던 저처럼 말입니다. 가이드북 한 권만 들고 인도를 배낭여행하고, 중국어 하나 못하면서 현지 어학연수를 떠났던 과거의 경험 때문입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6.1 지방선거 취재. 역시 일단 가보니 답이 있었습니다. 전남에서 출마한 국민의힘 기초단체장 후보 4명 전부를 만나 험지에서 출마한 그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기사로 담았습니다.
     
    막상 기자가 되고 보니 호기심과 패기만으로 기자 일을 잘 할 수 있는 건 아니더군요. 인턴 기간과 6개월간의 수습 기간은 제게는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무엇이 기사거리인지에 대한 감이 없어 ‘이게 뉴스냐’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선배들에게 매일같이 깨지며 사실관계 하나라도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꼼꼼함과 치밀함을 익혀야만 했습니다.
     
    기자 생활이 여러분의 생각보다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가 기자를 선택한 이유’를 결코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기자로서의 자부심과 뿌듯함이 여러분을 결코 지치지 않게 해줄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 김예랑조선일보 김예랑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기자를 꿈꾸며 준비해왔을지 모르지만 조선일보 채용 홈페이지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클릭했다는 건 신문기자에 대한 흥미가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어릴 적 드라마에서 보던 기자란 직업은 당차고 반짝거리는 이미지인데, 일을 시작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눈밑 그늘이 짙어지고 퇴근길에 그날 점심 메뉴를 기억 못할 정도로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그럼에도 여러분이 질문하는 일이 즐겁고 관찰하고 기록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기자일을 시작하고 난 뒤, 두 가지 덕목의 중요성을 되새겼습니다. 첫째는 집요함입니다. 내 양심에 찝찝함이 남지 않을 때까지는 궁금하고 의심스러운 지점을 다 확인해야 지속적으로 좋은 취재를 할 수 있습니다. 설령 기사가 당장은 되지 않더라도 추후 연결고리가 되는 사건이 벌어질지 모르죠. 사람일, 세상일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늘 흘러가고 기자는 어떤 상황에 투입돼도 관찰과 기록을 하고 전달할 의무가 있기에 ‘전시’가 아닌 ‘평시’에 훈련이 돼 있어야 합니다. 의미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아닌, 핵심을 꿰뚫는 질문이 튀어나올 수 있도록 훈련하는 일은 기자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일을 시작한 후로도 계속 이어집니다.
     
    두번째는 겸손입니다. 모든 사람을 나보다 낫게 생각하는 태도가 상당히 실용적입니다. 직업윤리로서의 덕목인 것도 맞지만, 효과적인 취재에서도 상당히 유익한 처세술입니다. 영어 격언에는 ‘그 사람의 신발을 신다’라는 표현이 있죠. 완벽하게 되지 않더라도 항상 취재원의 눈높이를 헤아리는 것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극적인 차이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사가 재밌어집니다. 기자는 거시적인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오피니언 리더이기도 하지만, 먼저 관찰하고 기록하는 사람입니다. 헤아리는 시선을 담은 글은 독자들에게 더 친밀하게 다가갑니다.
     
    신문기자는 영상이 아닌 글로 현장을 그려냅니다. 발전된 기술로 실제 같은 영상에 비견되지 않는다 해도, 인류가 고대 근동 때부터 소통수단으로 써온 문자로 사실을 전달하는 일을 하는 신문기자는 고전이 여즉 사랑받는 것과 같은 이유로 명망이 있습니다. 얼마나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세세하게 기록하는지, 필요한 질문을 하는지 등, 기사의 가치를 결정하는 변인을 잘 염두에 두고 그에 맞는 여러분의 강점을 잘 키워나가고 단점은 잘 보완해나가길 바랍니다. 건투를 빕니다.

  • 안준현조선일보 안준현입니다.

    이 글을 읽는 귀하는 기자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고 있겠지요. 혹은 이미 조선일보의 일원이 되겠노라 굳은 결심을 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이 글을 읽고 꼼꼼히, '내가 과연 기자라는 직업이 맞을까?'라는 근본적인 시작점에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감히 바래봅니다.
     
    "기자 해볼만한 직업이야". 만나본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말씀하십니다. 기자는 꽤 경이로운 직업이기도 합니다. 기자는 記者. 기록한다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기'는 경이로울 기(奇)가 되기도, 재주 기(技)가 되기도, 남에게 기운을 주는 기(氣)가 되기도, 또 남에게 기생하는 기생 기(寄)가 될 수도 있지요.
     
    특히 대한민국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또 타사 기자들이 인정하는 영향력을 지닌(2023 한국기자협회 설문조사 기준) 조선일보 기자라면 더욱 해볼만한 직업입니다. 본문 조사 하나에 의미가 바뀌고, 단어 하나에 사회가 바뀝니다. 제발 기사를 고쳐달라고 오는 전화를 받는 건 부지기수. 집회에 나가면 "조선이 왔으니 중요한 집회인가보다"며 들리는 수군거림. 다음 날 신문에 "왜 우리 회사는 조선 기사에 없느냐"며 CEO에게 혼났다는 홍보팀 직원들의 하소연을 들으면 더욱 실감나죠.
     
    그러나 저는 귀하께, "과연 내가 기자에 맞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을 드립니다. 아마 대부분 후기는 "이런 사람이 기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텐데, 저는 "이런 사람이 기자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첫째, 기자를 왜 하고 싶으냐에 명확히 답할 수 있느냐입니다. 입사 후 한 선배가 "왜 기자가 됐느냐?" 물으셨습니다. 답하지 못했습니다. 선배께선 그러시더군요. "벽에 못이 나와 누군가 다친다면, 못을 망치로 두들겨 벽에 넣는 것이 기자다".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기자라면서 기자가 왜 됐는지 답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마시고, 왜 이 길을 걸어야 하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둘째, 나만의 전략 무기가 있느냐입니다. 조선일보 기자들 모두 다른 환경에서, 각자 다른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기자로서 필요한 전략 무기를 보유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말을 잘 하고, 누군가는 글을 잘 쓰고, 누군가는 친화력이 뛰어나고, 누군가는 해외에서 여러 경험을 해봤고, 누군가는 외국어를 잘 하고, 누군가는 사회를 향한 시각이 일반인과는 다른 비범함을 보였습니다.
     
    셋째, 무엇인가 포기할 용기가 있느냐입니다. 기자를 택했다면, 무엇인가는 포기해야 합니다. 워라벨일수도, 우정일수도, 애정일수도, 가족일수도 있지요. 저는 기자가 되고 두 가지를 포기했습니다. 워라벨과 우정입니다. 기자에게 '퇴근'은 없습니다. 그냥 몸이 취재현장에서 집으로 갔을 뿐입니다. 밤에도 주말에도 연락을 받을 수 있는 것이 기자입니다. 우정도 흔들렸습니다. 대학교 동기들과의 술자리. 술에 취한 동기가 취기와 광기가 섞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열심히 듣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동기가 그러더군요. "이러니 기자X들 앞에서 뭔 말을 못 하지"라고요.
     
    이 세 가지 질문에 답을 찾았다면, 이 험난한 길에 도전해볼만한 자격이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여러분을 후배로 만나뵙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박혜연조선일보 박혜연입니다.

    새해가 되자마자 다이어리를 사지만, 몇 장 쓰지 못하고 다음 해를 맞는 편입니다. 진득한 건 젬병인 탓입니다. 언시생 때만큼은 예외였습니다. 익숙한 게으름 대신 불편한 꾸준함을 택했습니다. 문 앞에 도착한 조선일보를 집에 들이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8시에 일어나지 않으면 벌금 3000원을 내야하는 '기상 스터디'도 했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매일 3시간씩 지면 기사를 읽고 따라썼습니다. 스무 번 넘는 불합격 끝에 기자가 됐습니다.
     
    기자가 되니 더욱 불편한 일들이 펼쳐졌습니다. 수습 땐 캄캄한 새벽 5시부터 매일 20km 떨어진 강남경찰서로 달려갔습니다. 찬바람 쌩쌩 부는 경찰서 로비에서 '문지기' 마냥,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모든 민원인에게 "어떤 일로 오셨냐"고 물었습니다. 대부분 거절 당하기 일쑤였지만 묻고 또 물어야 했습니다.
     
    가끔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도 해내야 합니다.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를 취재할 때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 한 영상을 올린 스웨덴 대원을 인터뷰하라는 '초고난도 미션'을 받았습니다. 태풍을 뚫고 스웨덴 스카우트가 묵는 충남 천안의 한 대학으로 무작정 내려갔습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대원을 찾기 위해,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Do you know who made this video?"라고 물었습니다. 2시간의 탐문 끝에 결국 대원을 찾아냈습니다. 해냈다는 짜릿함에 고된 여정이 씻겨나간 기분이었습니다.
     
    기자가 어렵고 불편해도 버티는 이유는 즐겁기 때문입니다. 매번 다양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뉴스의 현장을 가장 먼저 목격하는 일은 재미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일은 짜릿합니다. 매일 다른 곳으로 출근하기 때문에 지루하지도 않습니다. 하루는 아기 판다 '푸바오'를 만나러 에버랜드를 갔다가, 다른 날엔 시위를 챙기러 세종대로로 나서는 게 기자의 일입니다.
     
    막막한 시간을 보내는 준비생 신분이 무척 괴로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갈고 닦는 준비 과정은, 결국 어떻게든 기자가 된 이후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기자가 된 지금, "어떤 어려운 취재도 될 때까지 부딪히면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 현장에 나섭니다. 언시생 시절 나를 갈고 닦아, 꾸준히 노력하는 습관을 들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기자가 아니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냐"고 물은 적 있습니다. 저는 "내가 올림픽 메달리스트더라도 결국 기자를 도전했을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단단히 미쳤다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일에 조금은 미쳐있는, 함께 오랫동안 즐겁게 현장을 누빌 후배님들을 기다리겠습니다.
     

  • 양승수조선일보 양승수입니다.

    “이 판에 들어온 이상 기자를 하게 돼 있다”
     
    입사 전, 친한 선배 기자께서 제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언론고시생들은 언론사 입사 시험을 지하철 2호선에 비유하곤 합니다. 언제 어디서 내릴지는 모르고 빙빙 도는 2호선이지만 결국에는 내리게 돼 있다는 겁니다. 정말 별말 아닌 것 같지만, 저는 이 말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저는 이 2호선에서 내리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에 인턴전형 3번을 떨어지고, 3번째 일반전형 만에 입사했습니다.
     
    공채가 뜨고 입사 시즌이 되면 저도 여러분처럼 이 사이트에 들어와 ‘선배들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때마다 조선일보에 오고 싶은 마음은 계속해서 커졌던 것 같습니다. 다만 느끼는 감정은 달랐습니다. 처음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하며 설렘을 가득 안고 ‘나도 여기에 들어오고 싶어’하며 보러 왔었다면, 나중에는 ‘도대체 나는 언제 이곳에 입사를 할 수 있을까’하는 답답한 마음에 들어오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들어오셨을 텐데,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이야기와 지원자분들께서 듣고 싶은 말은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궁금한 건 ‘어떻게 합격할 수 있냐’일 것이지만, 그건 저도 정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저는 제가 어떻게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번 떨어졌다고 해서 ‘이 회사는 나랑 맞지 않아’하며 ‘못 먹는 감’ 취급을 한다거나 포기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이유는 제가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질문은 각자 겪은 경험에 따라, 지금 상황에 따라 다를 겁니다. 정형화된 정답도 없습니다. ‘이렇게 답해야 합격한다더라’ 같은 것도 허상일 겁니다.
     
    ‘어떻게 기자가 될 수 있냐’는 이미 다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과 끝인 자기소개서를 잘 쓰고, 논술과 작문, 상식, 르포, 면접을 잘 보고.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 보다는 ‘왜 내가 기자를 하고 싶은지’를 잘 고민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왜 조선일보 기자가 되고 싶은지’ 답을 내리셨으면 합니다. 그 답을 내리시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리시는 역이 조선일보가 될 것입니다.
     
    단번에 합격하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몇 번을 떨어지고서야 붙는 사람도 있습니다. 포기만 하지 않고 ‘왜 기자를 하고 싶은지’ 그 마음이 꺾이지 않는다면 “이 판에 들어온 이상 조선일보 기자를 하게 돼 있다”고 믿으셨으면 합니다.

  • 이민준조선일보 이민준입니다.

    이른바 ‘언론고시’를 준비하다보면, 기자는 ‘개인사업자’라는 조언을 자주 듣습니다. 직접 발제거리를 찾아 취재하고, “오늘 제가 이 기사를 내겠습니다”라고 보고하는 것이 기본적인 사이클이기 때문입니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저는 그다지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조선일보 기자로서 경험한 8개월은 오히려 한 팀이 돼 최고의 기사를 낸 순간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수습기자 생활을 시작한 지난해 12월말, 첫 주차에 경인고속도로의 방음 터널에서 큰 불이 났습니다. 이때 기동팀은 화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현장팀 4명을 꾸렸습니다. 저도 선배와 함께 급작스런 지시를 받고 현장으로 출발했습니다. 과천으로 가는 50여분동안 회사에 있는 선배들께선 사고 지점의 방음 터널 공사업체 등 필수 내용을 취재해주셨습니다. 저를 포함해 현장으로 이동하는 팀원들은 사고 지점과 부상자 이송 병원 등 담당 지역을 나눠 취재에 착수했습니다.
     
    기자가 정말 개인사업자라면 폭넓은 보도는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모든 팀원이 함께 취재했기에 조선일보는 가슴 미어지는 희생자의 사연부터 전국 자동차 전용도로에 설치된 방음 터널의 화재 위험성까지 상세한 내용을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유관 부서인 국토부에서도 장관이 직접 현장을 살펴보며 방음 터널의 자재를 교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물론 홀로 이겨내야 할 상황을 수없이 맞닥뜨리게 될 겁니다. 영하 15도의 날씨에 버스정류장에 앉아 기사를 쓸 수도 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물 한잔이 간절한 순간도 찾아올 겁니다. 휴대폰이 꺼질까 싶어 보조배터리 서너개를 들고 다니는 것쯤은 일상입니다.
     
    지레 겁먹지 말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느 사건, 어느 현장을 챙기더라도 선배 기자들은 여러분들의 취재와 기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는 겁니다.
     
    입사 후 사령장을 받던 날, ‘잘 하자’며 격려해주시던 사장님의 응원이 떠오릅니다. 함께 하게 될 여러분, 같이 잘 해봅시다.

  • 정해민조선일보 정해민입니다.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정해민입니다. 약 1년 전 저도 이 페이지를 닳도록 들여다보는 언시생이었습니다. 제 글 또한 간절히 기자되길 바라는 누군가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몇 자 적었습니다. 편히 참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들이 기자가 되는 지 궁금했고, 그 모습을 닮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후기 속 선배들의 모습은 제각기 달라 갈피를 잡기 어려웠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자가 되는 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저마다 특징이 있을 뿐, 캐릭터가 겹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만의 색깔을 찾고 이를 전형 과정에 녹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주 사소한 요소라도 자신의 특성을 드러낸다면 좋은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신선한 대상에 끌립니다.
     
    ‘왜 기자가 되고 싶은지’와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을 마련해놓는 것이 좋습니다. 누군가에게 좋은 점수를 받는 대답을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모종의 이유로 업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 붙잡고 버틸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이 될 것입니다. 남들에게 이야기하기 곤란한 답이라도 좋습니다. 다만 너무 막연한 이유가 전부라면 언젠가 한 번은 뿌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기자를 하면서 조그만 바람에도 휘청이는 순간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입을 모아 힘들다고 얘기하지만, 기자는 원하다 포기하긴 아까운 직업입니다. 기자가 아니었다면 경험해보지 못할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어떤 취재원은 우리를 환대하고 다른 취재원은 우리를 홀대하지만, 어느 쪽이든 기자가 아니었다면 남일 뿐인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뿌듯한 기사가 나가면 환대의 기쁨은 제곱이 되고, 홀대의 슬픔은 옅어집니다. 하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고 우선 경험해보세요. 맞는 지 아닌 지는 나중에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 조재현조선일보 조재현입니다.

    “새벽 1시 25분에 1구 발견이요. 시내버스 기사래요.”
     
    기자들 5명이 모인 텐트로 지친 모습의 소방관 한 명이 걸어왔습니다. 14명이 목숨을 잃었던 ‘오송 지하차도 참사’에서 10번째 사망자가 발견된 순간이었습니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겠어’ 하는 마음으로 오전 8시부터 10시간 넘게 텐트에 앉아 있다가 ‘이제는 집에 가야겠다’ 하고 생각한 시점에 10번째 사망자 발견 소식이 들린 겁니다. 현장에 있던 5명만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새벽 2시 3분, 발 빠르게 인터넷에서 가장 먼저 속보를 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기자가 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새벽 2시까지 현장을 지키는 건 상상도 못할 어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습 첫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새로운 어려움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과제가 매일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홍대 한복판에서 외국인 관광객 10명을 찾아 인터뷰해야 했습니다. 처음 지시를 받았을 때는 암담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전단지 하나 받아주기 어려운 세상에서, 낯선 사람 10명과 영어로 대화하며 이름과 나이, 국적까지도 따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10명의 멘트와 신상을 메모에 가득 채우고 나면 왠지 모를 성취감이 그날 하루를 가득 채워줍니다. 마침내 지면에 기사까지 실리고 나면, 마치 앞으로 무슨 취재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근자감’도 생깁니다.
     
    하지만 하루만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성취감이 무색하게 또다시 새 과제 앞에서 또다시 막막함에 빠집니다. 하루는 SNS에서 유명해진 특정 개인 한 명을 직접 찾아서 인터뷰하라는 과제가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을 알 것 같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읍소하고, 인스타그램으로 DM을 돌립니다. 200㎞ 넘게 떨어진 곳까지 달려가 거의 울다시피 취재를 마치고 완성된 기사가 지면에 실려 또 새로운 성취감으로 하루를 채운 적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고난을 겪으며 기사를 내고 나서는 “과연 내가 기자 일을 해낼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수차례 들었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읽고 감사의 메일을 보내는 독자들, 기사의 주인공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물어보는 독자들 덕분에 다음날 하루를 보낼 성취감을 얻었습니다. 당장 내일도 막막하고 지난한 취재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자에게 한 줄이라도 더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겠다는 정신으로 임한다면, 큰 성취감이 또 보답처럼 돌아오지 않을까요.
     
    어떻게 취재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순간이 부지기수였지만, 그때마다 선배들의 조언 덕분에 하루하루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일보>가 ‘1등 신문’의 타이틀을 유지하는 것도 유능한 선배들의 충고와 노하우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능한 선배 기자들에게 배워가며 독자를 위한 질 높은 콘텐츠를 만들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